여행

억새로 뒤덮힌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 조선왕릉 동구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의외로 왕릉이라하기에 상상보다 작은 규모의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이미지는 뭔가 고루한 느낌이 있지만 우리 조상들의 디테일을 보고 있으면 대단하다는 말을 할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한번쯤 가봤을 조선왕릉은 그렇게 흥미롭다거나 핫한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것들이 없습니다. 더구나 조선왕릉은 세밀하게 보지않는한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그나마 관심이 갈 것 같은 능침 공간은 대부분 비공개 상태입니다. 궁궐이나 사찰등 다른 유적에비해 일반적으로는 그리 관심가는 대상이 아니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조선왕릉 전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첫번째 이유는 42기중 남한에 있는 40기가 모두 제대로 보존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개성에있는 두개는 이성계의 첫째부인인 신의고황후의 제릉이고 2대왕인 정종의 후릉이 있습니다. 간간히 사진으로 찾아본적은 있어 사라지지 않은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가볼수 없는 곳이라 같이 올라가는 것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왕릉하면 거대한 규모와 함께 진귀한 보물과 도굴이 떠오를텐데 조선왕릉은 도굴범들이 쉽게 손댈수 없는 구조이고 조금 공부를 하고 덤빈다면 파봤자 가져갈만큼 진귀하거나 값비싼것도 없습니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서는 왕이 검소함을 본보기로 보여야했기에 체통은 지키되 사치품같이 뺄수있는건 되도록 빼는것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왕릉이 파헤쳐진적은 한번 있지만 임진왜란 당시 선정릉에서 있었던 일로 도굴이 아닌 대놓고 파본 것입니다. 2006년 서오릉의 순창원을 도굴하려던 흔적이 발견되어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회벽으로 다져진 조선왕릉은 포크레인을 동원하기전에는 파고들어갈수 없는 구조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보존이 잘된 자연경관입니다. 대부분의 왕릉은 숲길과 산책로가 있습니다. 현재의 왕릉 권역이 많이 축소된것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경기 지역에 남아있는 자연환경으로서 특히 강남 한복판 선정릉은 도심 한가운데 허파와 같은 공간이기도합니다. 말과 소들이 뛰어다니며 훼손이 많이된 서삼릉이나 선수촌이 들어서있던 태릉 그리고 군부대가 주둔하던 서오릉이 떠오르지만 현재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서삼릉을 제외하면 원래의 모습으로 많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세번째는 아직도 행해지는 전통방식의 제향입니다. 육백여년을 이어온 제향은 광복후 혼란기와 한국전쟁 당시에 10여년정도 진행하지 못한것을 빼고는 아직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올해 코로나로 중단되고있어 역병의 무서움을 새삼 실감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제향이 이어져 온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할수있습니다. 단순한 문화보존 차원이 아닌 전주이씨 후손들이 유교국가였던 조선의 조상숭배 전통을 그대로 이어나가는건 다른한편으로는 경이로운 모습이라 할수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관계자들이 왔을때 한기정도는 발굴을 해봐야하는것 아니냐는 의견을 내세웠지만 세밀하고 철저하게 기록된 왕릉의 의궤를 보여주었고 아직도 제향이 치뤄지는 조상의 공간을 파헤치는건 도의적으로도 아니기에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유네스코 등재 기준가운데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었다는걸 증명해야 하는데 기록의 나라인 조선의 의궤가 크게 역할을 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에는 억새가 절정

건원릉 억새절정기

 

상세한 사진보기 링크(역사와문화 놀이터 블로그)

[연재] 조선왕릉 태조 이성계 동구릉 건원릉 억새 절정기 – 1
[연재] 조선왕릉 태조 이성계 동구릉 건원릉 억새 절정기 – 2

 

 

왕릉의 능침 공간은 말그대로 죽은 왕이 누워있는 곳이기에 매우 신성시되는 공간입니다. 지금은 관리차원에서 비공개이지만 예전 사진들을 보면 석마에 올라탄 모습을 볼수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누워있는 곳이기에 일반 백성은 함부로 왕릉에 들어올수 없었고 능침 공간은 왕도 마음대로 올라갈수없는 공간이었습니다. 답사 초반에는 능침에 마음대로 못올라가보는 것이 매우 불만이었는데 지금은 이해하고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사극에서도 자주 만날수 있는 분으로 왕이 되기전의 부인인 한씨가 있었지만 두번째 부인인 강씨와의 사이가 매우 좋았습니다. 강씨는 좋은 집안배경으로 이성계가 왕위에 등극하는데에도 많은 조력을 했습니다. 이성계는 고려말 혁혁한 공을세운 전쟁영웅이기는 했지만 지금으로보면 중앙권력과는 거리가먼 변두리지역에서 역이민온 아웃사이더라고 볼수 있습니다. 고려가 국가기능이 제대로 기능하는 시기였다면 역사상 이름을 남길 훌륭한 무장으로 남았겠지만 전반적으로 망해가던 사회였기에 이성계의 조선건국도 가능했습니다.

이성계는 원래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에 들어가려했습니다. 지금의 정릉은 서울 외곽에 있지만 당시에는 지금의 정동에 있었습니다. 정동의 지명 유래가 정릉이 있었기에 생긴것이기도합니다. 하지만 태종에게는 눈에가시같은 존재였기에 정릉은 해체되었고 방통교의 부재로 사용해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청계천 방통교에 가면 당시의 석물들을 볼수 있습니다. 이성계는 아들 방원과의 사이가 틀어진후에는 어차피 못들어갈것을 알았고 나고 자란 함흥에 묻히길 원했지만 이것도 역시 어려운걸 알았는지 자신의 능에 함흥지방의 억새를 심어달라 유언을 남겼습니다. 태종은 유지를 받들어 함흥지방의 흙과 억새를 심어 봉분을 꾸몄습니다. 

건원릉의 억새는 동구릉의 명소이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이기도합니다. 10월에서 11월까지 억새 절정기로 몇년전부터 예약을 받아 능침공간을 개방했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힘들것으로 보입니다. 건원릉의 억새는 한식날에 한번 예초를 하고 그냥 자라는대로 놔둡니다.

 

경기도 구리에 위치한 동구릉은 한양 동쪽에 9기의 능이모여있어 동구릉이라 불립니다. 조선왕릉중 최대규모이고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이 있어 매우 상징적인 왕릉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걷는걸 좋아하면 아주 좋은 산책로가 될수있는 곳으로 아이를 동반하거나 걷는걸 그리좋아하지 않는다면 하루에 전부 둘러보기 힘든곳입니다. 

 

문화재청 동구릉 정보

주소
[우편번호 11910]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전화 : 031)563-2909, 031)564-2909
팩스 : 031)569-3346

 

교통편

 

대중교통
청량리 현대코아, 중랑역, 상봉역, 망우역에서 경기88, 경기202번 버스 이용.
강변역에서 1, 1-1, 9-2번 버스 이용.
경의중앙선 구리역에서 마을버스 2, 6번 버스 이용
* 버스정류장 명칭 : ‘우리나라최대왕릉군인 동구릉’

 

승용차
서울 → 동서울 → 구리시 → 동구릉
서울 → 의정부 → 퇴계원 → 동구릉
서울 → 화랑대사거리 → 구리시 → 동구릉
서울 → 망우리 → 교문사거리 → 동구릉
* 구리시내에서 퇴계원 방향(43번국도)으로 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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